[이종민의 콘텐츠 비하인드] 잘나가는 K팝처럼…드라마 스토리도 공동창작하면 좋을까

입력 2023-11-01 17:56   수정 2023-11-02 00:17

백지장을 맞드는 작은 일부터 국가 간 생산 분업까지 협업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사람 하는 일이 다 비슷한지라 대부분 일은 혼자 하는 것보다는 각자 자기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협력할 때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유독 창작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걸머지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창작하는데 다른 작곡가와 악장별로 나눠 작곡한다거나, 톨스토이가 ‘부활’의 카투사에 대한 묘사를 다른 작가에게 맡기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비록 청력을 잃었어도, 일흔이 넘었어도 창작자는 홀로 머리카락을 뜯으며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희미한 여명의 빛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이것이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창작의 서사다.

그러나 콘텐츠 산업에서 공동창작은 이미 익숙한 협업 방식이다. K팝을 작곡할 때는 멜로디를 만드는 톱라이너와 구성 및 반주를 담당하는 트랙메이커가 공동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각 분야 내에서의 합작 또한 적지 않다. 음악뿐 아니라 드라마의 협업도 비근한데, 특히 할리우드에서는 드라마를 여러 작가가 공동창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공동창작은 작가실이라는 곳에서 이뤄지며 많으면 10명 넘는 작가가 역할을 세분화해 대본을 완성한다. 방향을 제시하는 쇼러너는 물론 각 회차를 주도해 집필하는 작가도 있고, 아이디어를 내거나 서사의 개연성을 검수하는 작가도 있다. 범죄 수사 드라마처럼 주인공 캐릭터들이 정해져 있고 회차별로 독립적 사건이 전개되는 작품이 공동창작에 더 용이하지만 서사가 중심이 되는 많은 작품도 공동으로 창작된다. 최근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며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예전보다 간소한 미니룸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협력을 통한 창작 방식을 고수하는 곳도 많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작가 홀로 창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조작가들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중요한 캐릭터와 서사를 직접 설계하고 스토리를 완성한다. 스토리의 감동과 재미는 참여한 작가 수와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방식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혼자 집필하면 작가가 오랜 시간 고민해 온 캐릭터, 메시지, 작가의 개성이 온전히 작품에 녹아들 수 있다. 다만 스토리를 완성하는 데 비교적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 매년 새로운 시즌을 빠르게 제작해야 하는 할리우드가 공동창작을 선호하는 까닭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시즌제와 스핀오프 드라마가 증가하면서 공동창작이 주목받고 있다. 1인 창작이 다루기 어려운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고 개별 작가의 장점을 응집하면 창의성과 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콘텐츠가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창작 방식이어서 우리 회사도 다양한 형태의 공동창작을 운영하고 있다. 영화감독과 드라마 작가들이 공동으로 새로운 스토리를 개발하거나, 기성 작가와 신인 작가가 힘을 합쳐 원작을 각색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식이다. 우리나라 콘텐츠 환경에 적합한 공동창작 방식을 연구개발(R&D)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프로듀서, 부산지역 작가, 오펜 작가들이 함께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스토리를 개발 중이다. 창작 자율성, 작가들 간 균형 등 협업의 장점을 끌어낼 수 있는 공동창작 구조를 구축하면 매력적 캐릭터와 흡입력 있는 스토리가 더 많이 탄생할 것이다.

매일, 매월 새로운 영화와 드라마가 나오지만 새로운 스토리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새로운 스토리가 줄어들고 익숙한 이야기들만 상호 복제된다면 과거 다른 나라 콘텐츠들이 보여줬듯 관객과 시청자를 잃고 결국 K콘텐츠의 경쟁력도 쇠락할 것이다. 경쟁력 있는 스토리를 창작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과 도전, 그리고 그런 노력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기다.

이종민 CJ ENM IP 개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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